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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는 원래 조선 땅 !
일본 고지도에 조선의 영토로 표기
2011년 05월 11일 (수) 21:32:25 류기석 yoogiseo@yonsei.ac.kr

일본(日本)이 1869년대 국제공인 고지도를 통해 대마도(對馬島. 일본명 쓰시마)를 조선 영토로 인정했다는 주장이 지난 1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승만 포럼에서 제기됐다.

   
▲ 삼국접양지도

이같은 주장은 김상훈 대령(육군사관학교 군사훈련처장)이 일본인 하야시 시헤이(林子平. 1738∼1793)가 1785년 작성한 '삼국통람도설'이라는 책에 일본과 그 주위 3국(조선, 오키나와, 훗카이도), 무인도였던 오가사와라(小笠原) 제도에 대한 지도와 해설을 담은 '삼국접양지도' 등 5개 지도를 공개한데서 비롯되었다.

   

일본은 1860년대 오가사와라 제도를 두고 미국과 분쟁하던 당시 독일 동양학자인 클라프로스가 번역한 삼국접양지도의 프랑스어판을 증거로 제시해 영유권을 인정받은바 있다. 그런데 이 지도에서는 오가사와라 제도를 일본 영토라 규정했지만, 울릉도와 독도, 대마도를 조선 영토로 적시해놓은 것이다. 

이 삼국접양지도는 과거에도 여러 연구자에 의해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자료로 인용된 바 있는데, 당시 인용된 자료는 원본이 아닌 흑백 필사본으로 대마도의 영토구분이 어려웠다고 한다. 하지만 원본에서는 분명히 대마도를 조선 땅으로 분류하고 있다고 한 것이다. 

이 원본은 독도연구 전문가인 한상복 박사가 호주에서 구입한 것으로 추정되며, 김 대령은 이 지도를 국회도서관 독도 특별 전시관에서 찾았다고 전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앞으로 한일간 영토문제에 있어서 독도는 물론 대마도까지 귀추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이밖에 대마도가 오래 전부터 우리 땅이었다는 기록은 각종 사료나 고지도를 통해 단번에 알 수 있다. 우선 서양인이 제작한 일본과 조선(JAPAN & COREA) 대마도 지도 'THE MAP DRAWN&ENGRAVED BY RAPKIN. THE ILLUSTRATIONS BY HWARREN&ENGRAVED BY J.H.KERNOT'로 뉴욕 또는 런던에서 발행한 것 등이 있으며, 이를 참조하면 독도(Aragonaut), 울릉도(Dagelet), 대마도(TSUSIMA ISLES)가 각각 조선의 강역으로 표시돼 있고, 지도 상단 중앙에 일본 수도 YEDO, 좌측 하단에 조선의 관리로 보이는 3명이 COREANS, 우측하단에 거북선으로 보이는 STATE BARGE라고 적힌 3장 삽화를 첨삭한 것을 특징으로 볼 수 있다.

   
▲ JAPAN & COREA(일본과 조선), THE MAP DRAWN&ENGRAVED BY RAPKIN. THE ILLUSTRATIONS BY HWARREN&ENGRAVED BY J.H.KERNOT, 작성자 아란불

한편 한국인이 제작한 조선령 대마도 지도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비롯하여 수없이 많다. 혼일강리역대국지도, 동국지도, 동국전도, 팔도총도, 조선방역지도, 동국조선총도 등 조선시대에 제작된 대부분의 지도가 대마도를 우리 영토로 표시하고 있다.

   
▲ 대동여지, 조선후기 고종 때 김정호가 제작

 

   
▲ 대동여지전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소축척으로 줄여 만든 약 92만분의 1의 우리나라 전도. 김정호의 제작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대식 축척으로 환산하면 1:162,000이며 22개의 첩본으로 이루어져 휴대하기에 편리하다.

이와함께 대마도의 사료를 찾아보면 '세종실록' 1419년(세종 1년) 7월 17일조에는 "대마도라는 섬은 경상도의 계림에 예속했으니, 본래 우리 나라 땅이란 것이 문적에 실려 있어 분명히 상고할 수가 있다.(對馬爲島, 隷於慶尙道之�林, 本是我國之地, 載在文籍, 昭然可考)"는 상왕 태종(太宗)의 말을 기록했다.

   
▲ 동국지도, 세종 때 정석과 양성지가 제작한 지도로 규형과 인지를 최초로 사용한 실측지도

 

   
▲ 동국지도(동국전도), 조선후기 영조 때 정상기가 제작, 우리나라 최초로 백리척의 축적법으로 실측

태종은 이어 "다만 그 땅이 매우 작고 바다 가운데 있어서 왕래함이 막혀 백성이 살지 않았는데, 왜인(倭人) 중 그 나라에서 쫓겨나 갈 곳 없는 자들이 소굴을 삼은 것" 이라고 말했다.

   
▲ 혼일강리역대국지도, 조선 태종 때 제작

 

   
▲ 조선국 지리도 중 팔도총도, 대마도를 조선 영토로 표시한 1592년 일본의 ‘조선국지리도’ 중 ‘팔도총도’. 현존하는 지도는 1872년 재모사한 것

같은 책 1444년(세종 26년) 4월 30일조에는 "대마도는 본래 조선의 목마지(牧馬地)"라는 기록이 등장하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만든 '팔도총도' 등 많은 지도들에도 대마도는 조선 영토로 표시돼 있다.

조선은 1419년(세종 1년) 1만7000명의 군사로 대마도를 정벌한 뒤 영토로 편입하거나 직접 세금을 거두는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으나 이곳이 경상도에 예속된 속방(屬邦)이라는 의식을 계속 지니고 있었다.

   
▲ 조선방역지도, 조선 전기에 제작된 한국 전도(韓國全圖). 《동국지도》 계통의 지도이다. 557년(명종 12) 또는 58년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 이회의 《팔도지도》보다 두만강과 북동부 지방을 많이 수정하였으며 만주(滿洲)와 쓰시마섬[對馬島(대마도)]을 한국의 영토로 표기,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유출되었던 것을 1930년대에 입수하였다. 국보 제248호.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15세기에 대마도는 계속 조선에 조공을 바쳤고, 16세기까지도 대마도주는 정기적으로 조선 국왕을 알현하는 사신을 보내 조선으로부터 관직을 임명 받았다.

일본이 정식으로 대마도를 직할지로 편입한 것은 19세기 후반 메이지(明治) 정부 때의 일이다. 현재 대마도와 부산 간 거리는 49.5km 반면, 대마도와 일본 규슈(九州)는 147km나 떨어져 있음에서 우리와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잘 할 수 있다.

   
▲ 조선방역지도, 명종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며 현존하는 지도 중 가장 오래되었음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는 부산과 대마도는 사회문화적으로 우리와 가까이에 와 있는 것이 현실이다. 1950년대 초반까지 서로가 저녁시간  배를 타고 부산과 대마도를 오가면서 술도 마시고 영화도 보고 즐기다가 그 다음날 아침에 돌아 갔다고 한다.

이후 오랫동안 부산과 대마도 간 뱃길이 끊겨 단절되었으나 1999년 정기여객선이 재 운행되면서 이곳은 다시 활기를 찾고, 최근 서울과 부산 간 고속철도(KTX)가 개통되면서 대마도는 서울에서 반나절이면 갈 수 있는 섬이 됐다.

   
▲ 조선팔도지도, 18세기 말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지도. 정상기의 <동국지도>의 수정본 계열에 속하는 전조(全圖)이다. 18 ~ 19세기로 이어지는 조선전도의 발달과정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지도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특히 대마도의 웬만한 사찰에는 신라불, 고려불 또는 조선의 범종이 모셔져 있고, 자연환경 또한 일본열도와는 다르다. 예로 산고양이, 말, 고려꿩 등 일본열도에서는 볼 수 없는 동물들이 서식한다.

이곳엔 우리민족사의 쓰라린 현장이 있다고 한다. 조선 숙종 때 조난당해 목숨을 잃은 조선역관사(譯官使) 108명을 기리는 역관사비, 왜놈들이 주는 음식은 먹을 수 없다고 버틴 면암 최익현의 순국비, 정략결혼으로 대마도주(島主) 가문으로 출가한 덕혜옹주(고종황제의 딸)의 결혼기념비 등이다.  

   
▲ 朝鮮全圖(조선전도), 18~19세기 지도로 채색 필사본, 녹둔도와 대마도가 조선영토로 표기, 작성자 아란불

 

   
▲ 朝鮮總圖(조선총도), 작자 미상인 18~19세기 조선 지도, 채색필사본, 독도뿐 아니라 대마도, 녹둔도도 우리 영토로 인식, 작성자 아란불

사실 국립지리원 등에 의하면 조선시대 이전의 대부분 고지도는 일제강점기 때 그들의 손에 의하여 전량회수되어 남산에서 3박4일간 불태워졌다고 했다. 그나마 대동여지도 등 남아 있는 것들은 모두 그들의 검열을 필한 것들이라고 한다.

개인이 소장했던 것들 중 1993년 경향신문에 보도된 1820년제작 海左全圖(해좌전도)기록물은 독도뿐 아니라 대마도도 우리나라 영토임을 알려주는 조선후기 지도다. 이는 경기 고양시의 한학자 이순규(李舜圭)님에 의하여 소장하여 오던 것을 공개한 것이다.

   
▲ 海左全圖(해좌전도), 19세기 작품으로 작자는 미상, 목판본으로 대규모 양산, 작성자 아란불

 

   
▲ 東國地圖(동국지도), 작자와 연대는 미상 조선 전기 채색인쇄로 제작, 작성자 아란불

 

   
▲ 慶尙道地圖(경상도지도), 전형적인 19세기 지도, 조선총도는 8도로 구성, 경상도 편, 작성자 아란불

 

   
▲ 東覽圖(동람도), 1531년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 지도를 17세기에 복각, 경상도 편, 작성자 아란불

목판(木版)지도로는 1858년에서 1600년대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조선시대 만든 최고본(最古本)으로 '동국주현도(東國州縣圖)'가 삼성출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이러한 것들을 자세하게 연구한다면 독도와 대마도 문제에 중요한 단서가 될 듯 싶다.

   
▲ 동국주현도 경향신문 관련기사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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