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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외교를 빛낸 인물
토문감계사 이중하
2011년 10월 20일 (목) 15:23:32 음혁민 korn14@nate.com

 

   
외교통상부는 외부 전문가 자문, 부내 토론 등 의견 수렴을 거쳐2011년 ‘우리 외교를 빛낸 인물’로 조선 후기 청나라와의 국경획정 협상에서 국가이익 수호에 헌신한 이중하(李重夏, 1846-1917)를 선정하였다.

이중하는 1885년 및 1887년 청나라와의 국경획정 회담에서 토문감계사(土門勘界使*)로서 투철한 주권의식과 애민정신으로 외교교섭을 수행함으로써 국가이익 수호에 공헌하였다.

※토문감계사(土門勘界使) : 19세기 말 조선 농민의 간도지역 이주가 증가하면서 이들에 대한 단속과 관할문제가 토문(土門)의 위치를 둘러싼 국경문제로 비화하자 朝-淸간 1885년 및 1887년 2회에 걸쳐 국경회담(勘界)이 개최되었는바, 이중하는 회담대표인 토문감계사로 활동

(토문감계 교섭 경과)

1712년(숙종 38) 朝-淸은 양국간 국경획정 회담을 열고, 백두산 정계비를 세워 경계를 정하였다. 정계비의 내용은 ‘서쪽은 압록, 동쪽은 토문을 (국경으로) 하며(西爲鴨綠 東爲土門), 이를 분수령상의 돌에 새겨 기록한다(分水領上 勒石爲記)’는 것으로, 양국간의 경계를 압록과 토문을 기준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 토문감계사 이중하
그러나 19세기 말 조선 농민의 간도지역 이주가 증가함에 따라 이들의 단속과 관할권 문제가 양국간 국경문제로 비화되면서 양국은 1885년, 1887년 두 차례 국경 획정을 위한 회담을 개최하였다.

1885년 1차 국경획정(勘界) 회담에서 청측은 백두산 정계비의 토문은 두만강을 지칭한다면서 정계비의 기록을 조사하기보다는 먼저 두만강의 원류를 조사한 후, 이를 국경으로 획정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이중하는 청측 기록을 근거로 두만과 토문은 별개의 강임을 강력히 제기하고, 청측이 정계비의 위조 가능성 및 그 내용을 의심하는 것은 정계비를 세운 청나라 강희제(康熙帝)의 유지를 모욕하는 것이라고 반박하면서 국경획정을 위해서 우선 정계비를 답사할 것을 주장하였다.

결국 이중하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양측은 백두산 정계비와 주변의 지형, 두만강의 원류를 모두 답사하였고, 이 답사를 근거로 조선은 토문과 두만이 별개임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청측은 이를 수용하지 않고 두만강을 국경으로 하자는 입장을 굽히지 않아 1차 국경획정 회담은 별다른 합의를 보지 못한 채 끝났다.

1887년 2차 국경획정 회담에서 청측은 백두산 정계비는 경계를 나타낸 것이 아니라 국경조사를 기록한 것이니 국경획정과는 무관한 것이라면서, 산세(山勢)와 수형(水形)에 따라 새로 조사하고 측량할 것을 주장하며, 나아가 자신들이 지정하는 곳을 경계로 정할 것을 압박하였다. 이에 이중하는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을 것이나 나라의 영토는 줄일 수 없다”라며 결연한 자세로 청측의 요구를 완강히 거부하여 2차 회담도 결렬되었다.

이와 같이 이중하는 실사와 고증에 기초해 청측의 주장을 반박하는 등 합리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외교교섭을 전개하여, 당시 국제질서에서 애국애민하는 외교의 한 전형을 보여주었으며, 朝-淸 국경을 두만강으로 고착화하려는 청측의 의도가 관철되지 않도록 함으로써 조선이 간도지역 이주민을 보호할 수 있는 근거를 남겨놓고자 하였다.

토지(土地)의 작가 박경리(朴景利)는 ‘이미 나라의 지배 밖으로 떠난 유민들의 터전을 지켜주기 위하여 목을 내걸고 항쟁한 이중하’* 라면서, 이중하의 애민 정신과 공복으로서의 자세를 높이 평가한 바 있다.
※ 1995.12.10자 동아일보‘아침을 열며 - 총체적 인식의 결여’칼럼 내용 인용

지방관으로 재직시 청렴한 관리로 이름이 높았던 이중하는 1909년 일진회(一進會)가 합병을 주장하자 국시유세단(國是遊說團)을 조직하여 반대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10년에는 한일합방에 극렬히 반대하였다.

또한 이중하는 대한제국 시기에 오늘날 외교부 차관에 해당하는 외부(外部) 협판(協辦)으로서 활동하였다.

외교통상부는 2009년부터 ‘우리 외교를 빛낸 인물’ 선정사업을 통해 우리 역사상 외교에 기여한 인물의 생애와 업적을 발굴해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09년 고려시대 서희(徐熙), 2010년 조선시대 이예(李藝)를 각각 ‘우리 외교를 빛낸 인물’로 선정한 바 있다. ‘우리 외교를 빛낸 인물’선정사업은 외교 일선에서 국익을 증진시킨 사례를 역사 속 인물을 통해 재조명함으로써 우리 외교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과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외교통상부는 금년도‘우리외교를 빛낸 인물’선정 사업을 통해, 영토주권 수호와 애민정신에 투철한 우리 외교관의 전형을 제시함으로써 외교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자부심을 고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외교통상부는 연구기관과 협력 하에 이중하의 생애와 외교적 업적을 심층적으로 조사·연구한 후, 그 결과를 금년 12월 학술회의를 통해 발표할 예정이다.

출처 : 외교통상부 (http://www.mofa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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