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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연구에 지적 상상력을 불어넣자!
[신년특집]한국사는 광복의 그날을 고대하고 있다
2010년 01월 02일 (토) 15:17:36 이병화 bhlee9200@hanmail.net

   
경기도 개성시가 고려의 도읍지 개경이었고 서울특별시가 고려의 남경이었을 것이라는 믿음이 오늘날 강단사학계의 통념이다. 그런데 개성시에는 비록 고려시대의 것이라고 입증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런대로 고 건축물과 역사 유적들이 더러 남아있지만, 서울특별시에는 그나마 고려시대의 역사 유적이라고 치부할 만한 곳이 전혀 없다. 성곽도 조선 세종 때 구축한 것이 틀림없고, 고 건축물이라 하더라도 조선시대 이전의 것을 찾아보기란 참으로 어렵다.

따라서 서울특별시가 고려의 남경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나 역사적 추측은 신빙성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울릉도가 고대의 우산국이었을 것이라는 가설도 설득력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인접국과 조공무역을 했던 국가가 울릉도에 있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사회과학적 망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울릉도에는 고대국가가 영위되었을 만한 지리적 여건도 안 될 뿐 아니라 그에 상당하는 역사문화유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강단사학자들의 맹신에 대한 의문은 계속 확대될 수 있는데 신라의 천년 도읍지였다는 경주는 물론, 가락의 도읍지였다고 추정하고 있는 김해시, 백제의 도읍지였다고 억지 주장되고 있는 부여군과 공주시, 고구려의 도읍지였다고 믿고 있는 평양시, 심지어 고려의도읍지였다는 개성시에 이르기까지 어느 곳에서도 당시의 역사사실을 그럴듯하게라도 나타내주는 궁궐 또는 궁전의 건축물이나, 묘사, 대규모 사찰, 시장, 주거시설 등의 유적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반면, 조선의 역사유적은 태조, 정종, 태종 등 초기의 것은 확인할 수 없지만, 세종 이후의 것은 실제와 기록이 일치하고 있어 위치와 관련된 역사사실을 의심할 단서를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사안을 종합해 보면 한반도는 세종 이후 조선의 중심 강역이었음은 틀림없으나, 조선 초기, 고려, 신라와 발해, 고구려, 백제, 그리고 가락의 중심 강역이었을 것이라는 추정은 확실하게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될 위태로운 상황의 연속이다.

결국 한반도와 만주가 우리 역사의 일관된 중심 강역이었을 것이라는 단정은 그 진위를 철저하게 짚어 보아야 할 충분한 당위성을 지니고 있는 한갓 가설에 불과한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할 대목은 일제의 식민사관이나 조선의 반도사관은 이러한 의문점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았으며, 심지어 오늘날의 강단사학도 재야사학자들이 줄기차게 제기한 우리 역사의 강역문제에 대해 강 건너 불구경하듯 애써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조선의 역사기록인 조선왕조실록이 온전하게 전하고 있고, 첨삭된 상태로이지만 고려시대의 고려사와 신라, 고구려, 백제 세 나라의 역사서인 삼국사기를 접할 수 있다. 아울러, 고난의 역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제 모습을 지켜온 신라의 부도지, 고구려와 발해의 환단고기도 어렵사리 전해지고 있다.

   
▲ 이병화 역사문화연구가


부도지와 환단고기를 외면하는 강단사학자들이라 할지라도 조선왕조실록, 고려사, 삼국사기만이라도 제대로 연구 분석 한다면 한반도가 우리 역사의 중심 강역이 아니었음을 충분히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조선 초에 조선정부는 왜 민간인들이 소장하고 있던 우리 고대사서를 수거해 없앴는지? 또 무엇 때문에 고조선의 역사를 신화로 둔갑시키려 애썼는지? 어찌해서 우리에게는 조선 초와 그 이전 우리의 강역을 표기한 지도가 전혀 전해지지 않는지? 그리고 일제는 무엇 때문에 우리 민족의 고사서를 강제로 압수해 불태워 버렸는지? 한사군설과 임나일본부설을 날조해 그들의 침략을 합리화하는데 악용했는지를 확연히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상식과 학문 수준은 조선과 명, 그리고 청과 일제가 왜곡하고 날조한 역사의 진위를 가려내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거나 게으르지 않다. 강단 사학자들에게는 기대하기 어렵겠으나 우리 역사는 순수한 민간인들에 의해 충분히 광복될 수 있다. 우리역사와 불가분의 관련성을 지닌 25사도 전해지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역사의 중심 강역으로 추정되는 대륙도 둘러볼 수 있으며 대륙의 역사문화 관련 자료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조선왕조실록, 고려사, 삼국사기에 수록된 객관적 사실에 기초를 두고 부도지, 환단고기가 지니고 있는 민족정통의 자부심과 열정으로 우리 역사연구에 지적 상상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그 때가 언제일지는 몰라도 우리 역사의 광복은 가까운 시일 내에 반드시 올 것이다.

역사 광복의 그날이 오면 우리는 단기 4343년을 식민사관을 없애버리고 반도사관의 허구성을 밝혀 우리 역사의 참모습을 찾는데 진력한 상징적 원년으로 기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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