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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반도사관으론 참 역사를 알기 어려워
우리 역사의 제 모습은 종합적인 사서연구의 정보데이터베이스 구축으로 객관적인 역사작업이 필요하며, 반도사관은 세종(1418년)과 예종(1450)과 성종(1457년)에 걸쳐서 현재의 사관으로 굳혀짐
2010년 01월 02일 (토) 16:22:24 류기석 yoogiseo@yonsei.ac.kr

[편집자 주] 제대로 된 우리역사의 복원작업은 엄두도 내지 못해

요즘 우리의 바르지 못한 역사지식으로 말미암은 역사인식과 교육 그리고 주변국들의 역사왜곡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일들 중 하나이다. 이는 학계나 정부, 종교계에서 조차 제대로 된 역사 찾기는커녕 잃어버린 근본사상과 문화, 종교까지도 몽땅 서구문명 쪽으로 치우쳐 구체적인 실증연구는 고사하고 많은 사료를 방기하고 있고, 정보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참 역사를 되찾겠다는 확고한 의지도 없는 정부의 대응방식이나 학계의 소극적인 반응은 이벤트성 구호에 그쳐 안타까움을 금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에 보태여 우리의 역사관은 반도사관에 집착한 나머지 제대로 된 우리역사복원작업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상의 강역(疆域)에 대한 철저한 정보조사와 사료를 연구하고 검증해보는 절차를 무시했기에 “우리의 참 역사바로알기”는 더욱더 오리무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40여 년간 우리 강역의 역사를 연구해온 이병화 역사연구가로부터 참 역사의 지적 상상력을 자극받자!

 '바른 역사연구모임' 태동

지난 2006년 9월 13일 오후 4시 연세대학교 제1공학관 442호 강의실에서는 “우리역사의 복원작업은 민간주도의 연구 활동이 중심이 되는 시민운동으로 펼쳐서 결실을 맺어야 한다.”라는 뜻으로 ‘바른 역사연구모임’이 태동하여 첫 강연회가 개최되었다.

   
▲ ‘바른 역사연구모임’의 첫 강연회 개최

이날 진행을 맡은 연세대 박민용 교수는 “시대적 소명인 우리역사 바로 찾기에 함께 힘을 모으자”고 했고, 이어 열린 강연은 “우리 역사의 제 모습을 찾아내자”라는 주제로 이병화 역사연구가의 강연과 자유토론이 있었다. 예상대로 강의실을 찾은 사람은 저조하였으나 우리의 올바른 역사를 위한 열의는 매우 높았던 시간이었다.

거시적인 사료연구와 철저한 자료검증이 함께 이루어져야

토론 후 “현재 나라 안 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과거사에 대한 왜곡된 사료들을 바로잡아 주변국들의 역사연구는 물론 우리민족의 제대로 된 역사를 찾아 새로운 21세기를 맞자”라고 다함께 입을 모으고, “한반도에 국한된 부분적인 역사의식에서 벗어나 관련되는 주변 강역을 통틀어 보는 거시적인 사료연구와 철저한 자료검증이 함께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했다.

최근, 일본의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과 맥을 같이하여 중국은 타민족의 땅을 수호하려는 중화문명탐원공정의 일환으로 동북삼성지역에 대한 동북공정을 수행하였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중국은 이어도 인근 수역의 관할권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동북공정 중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한강 이북의 중국 지배설은 중국 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이 2002년부터 계속해서 연구해온 ‘동북공정( 東北工程)’이라는 한국 고대사연구 프로젝트의 연구결과이다.

동북공정 중 시급히 해결해야 될 문제는 간도문제

동북공정 문제의 발단을 자세히 살펴보면 일부 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기원전 108년 한나라가 고구려 영토를 차지하여 한사군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사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사군이 설치되었었다는 기록은 해당 시기의 고대사 어느 기록에서도 찾아 볼 수 없고, 기원후 44~49년에 후한(後漢)이 고구려를 침공해 낙랑군과 현토군을 설치했었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또 조조의 위나라가 남대방군을 설치한 시기도 238년~242년인데 그때 남대방군의 위치는 한반도 한강근처가아니라 대륙의 한수(漢水)부근(사천성으로 추정)이었다.

현재 중국과 시급히 해결해야 될 문제는 간도문제로 간도협약은 1909년 간도의 귀속문제를 협정한 청나라와 일본간의 협약으로 과거 중국 길림성 간도지방의 귀속문제를 둘러싸고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분쟁이 있었다. 간도분제는 국제법상 2009년이 시효인데 시효말료를 앞두고 한 민간단체에 의해 국제사법제판소에 이의를 제기한 상태다. 간도는 지금의 백두산 북쪽 옛 만주일대, 지금의 연변조선족자치주에 해당되는 지역을 말한다.

헌법상 "대한민국의 영토는 대한민국 영토와 조선족자치주 간도를 포함합니다."는 원상복구에 대한 의결 선언해야...

2001년 유엔 국제법위원회에 의해 채택된 ‘ 국가책임에 관한 조문 초안’이 “(사람 또는 집단의 행위는 그 사 람 또는 집단이) 사실상 국가의 지시에 따라, 또는 국가의 지휘 나 명령 아래서 행동하고 있는 경우에는 국제법상 당해 국가의 행위로 간주된다”(제8조)고 규정하고 있음에 정부는 외교통상부나 행정자치부를 통한 국회의 발의로 원상복구에 대한 의결선언으로 “헌법상 대한민국의 영토는 대한민국 영토와 조선족자치주 간도를 포함한다.”는 원상복구에 대한 의결 선언이라도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1712년의 백두산 정계비는 한·청 국경에 대해 ‘서쪽은 압록강으로 하고 동쪽은 토문강으로 한다’(西爲鴨綠 東爲土門)고 적고 있다. 동쪽 경계를 토문강(지금의 송화강 상류)으로 하면 토문강 이동 지역인 간도가 당연히 우리 쪽에 들어오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중국이 토문강이란 두만강을 말하는 것이라고 강변함으로써 양국간에 영토분쟁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 중국정부의 속내를 가만히 살펴보면 개발에서 소외된 신강자치구와 서장(티벳)자치구, 내몽고자치구와 동북자치주(20세기 대한제국의 영토) 등 소수민족들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들로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다.

중국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다

한국의 역사인식의 문제점은 중국에 대한 연구가 미미하고, 한때 일제에 의해 강제점령을 당한 우리가 일본에 대한 연구를 철저히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도 제대로 연구를 하지 않는데서 안타까움은 더하다 하겠다. 우리나라가 어떠한 나라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니 온전한 제나라의 역사를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이 세 나라를 제대로 연구하면 분명한 한국사가 나오게 될 것이 분명하다.

앞으로 추진해야 할 일은 첫째, 우리나라 사서연구이며. 둘째, 중국사서 26사와 만주원류고, 몽골사기의 연구. 셋째, 일본서기와 그 이후의 일본정사의 연구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나라 사서로는 우선 환단고기, 부도지, 단기고사, 삼국사기, 고려사, 아방강역고, 조선왕조실록, 규원사화, 신단민사, 신단실기 등을 중점 연구해야 할 것이다.

이렇듯 과거는 땅이 중요하지만 현재는 정보자료가 중요한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믿을만한 사료를 제대로 연구하여 우리 역사의 제 모습을 찾는 것이 이 모임의 궁극적인 취지이자 21세기의 한국역사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아래는 이병화 역사연구가의 강연내용 전문이다. 이것이 우리 역사를 제대로 찾기 위한 분들에게 많은 참고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 역사의 제 모습을 찾아내자] 전문

   
▲ 이병화 역사연구가
일제의 압박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이 건국된지 6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우리민족의 역사는 광복되지 않았다.

오늘날 제도권의 역사학자들은 연구가 어려운 상고사나 고대사, 심지어 중세사에 대한 관심을 제쳐두고 비교적 수월한 근세사와 현대사에 몰려있다. 위정자들의 역사인식도 미약하기 그지없는데 우리역사를 학교교육에서 조차 소홀히 하고 있고 교과서 편찬에서도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역사의 현실은 안타깝게도 일제(日帝)와 청(淸)이 조작한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조선(朝鮮)과 명(明)이 만들어낸 허구의 반도사관이란 덫에 걸려 꼼짝도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중국의 하상주단대공정이나 동북공정, 그리고 일본의 교과서 왜곡사태에 적정한 대응이 불가능한 형편이다.

   
▲ <표 1> 우리 역사의 주요 도읍지

한(漢)이 한반도 북부에 사군(四郡)을 설치했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이나, 위(魏)의 대방군이 한반도 중부에, 왜倭의 임나일본부가 한반도의 남부에 위치했었다는 억지가 아직도 통용되고 있다. 한반도의 평양이 고구려의 도읍지였으며, 경주가 신라의 천년 지속된 고도(古都)였고, 개성이 고려의 도읍지였었다는 허구의 역사 강역인식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역사의 제 모습은 찾을 수 없다.

한반도의 사정을 꼼꼼이 따져보자! 평양과 경주와 개성이 고구려 신라, 그리고 고려의 도읍지였음을 입증할 수 있는 유적이 실제로 존재하는가를. 고대국가의 도읍지가 보여줄 수 있는 여러 가지 유적가운데 궁궐이라는 한 가지 주제로 보면 한반도에는 경북궁이나 창덕궁 등 몇몇 조선의 궁궐이외에 고려나 고구려 신라시대의 궁궐유적을 찾아볼 수 없다.

기록상으로 유추해 볼 때 평양에는 고구려와 그 이전의 궁궐이 정궁만 열 곳 정도, 경주에는 정궁이 서른 곳 이상, 개성에는 건물이 소실되었다 하더라도 그 흔적으로 정궁만 일흔 곳 이상 확인되어야 한다. 어찌된 일인가?

대륙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북경시(北京市)가 연(燕)과 원(元)의 도읍지였으며, 섬서성(陝西省) 서안시(西安市)가 한(漢) ․ 당(唐)의 도읍지였다는 명과 조선이 만들어낸 허구의 인식에 무의식적으로 동조해버리는 한 동아시아의 역사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는다. 북경시에는 명과 청시대의 궁궐유적 이외에 연과 원대의 궁궐임을 입증할 수 있는 궁궐건물이나 흔적이 없다. 섬서성 서안시에는 지구상 어느 곳보다도 고대 유적이 즐비한 곳인데 고대로부터 궁궐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는 유적 중 그곳이 한과 당의 것임을 입증할 수 있는 것은 확인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민족의 상고사와 고대사, 그리고 중세사마저도 그 바탕이 되는 강역이 한반도와 만주였다는 검증되지 않은 황당한 가설을 아무런 의심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객관성에 바탕을 둔 실증사학을 추구하는 양심적 지식인이라면 울릉도에 우산국이 있었고, 제주도에 탐라국이 있었다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무책임한 판단에 결코 동조할 수 없다.

고구려, 백제, 신라 그리고 고려의 강역에서는 양羊을 방목했으며 면화가 재배되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그곳은 도시 전체가 파괴되는 대규모의 지진과 홍수, 그리고 강이 말라버리는 극심한 가뭄이 잦았고, 드넓은 평야의 농작물을 메뚜기 떼가 순식간에 앗아가는 지역이었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더구나 고려의 강역에서는 낙타목장이 여러 곳 있어 화물운송이나 전쟁시에 낙타가 동원되었다는 기록은 어떻게 해석해야 옳은가?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15세기 중기 이전의 어떠한 사서에서도 반도사관이나 식민사관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고려사와 삼국사기의 기록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반도사관이 허구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설정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오늘날 제도권 사학자들이 삼국사기의 내용을 기피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동아시아의 역사 연구에 있어 한국의 삼국사기(三國史記), 중국의 춘추(春秋)와 사기(史記), 일본의 일본서기(日本書記), 청(淸)의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등 각기 그들 나라의 정통 역사서가 그 내용이 불신 받고 있다. 불신의 이유는 각 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국가들의 역사 유적이 오늘날 우리가 그들이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강역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는 기원전후 시대의 고구려 ․ 신라 ․ 백제의 역사 유적이 없고, 대륙 동부에서는 하(夏) ․ 상(商) ․ 주(周)대의 유적이 발견되지 않았고, 일본서기에 기록된 고대국가의 유적이 없다. 만주의 사정도 같다. 이것은 동아시아 각국의 고대 강역이 한반도, 대륙의 동부, 일본열도 그리고 만주가 아니었음을 뜻한다.

우리나라 제도권 사학자들은 반도사관을 확신한 나머지 삼국사기의 기록을 불신함으로써 고구려, 신라, 백제의 건국연대를 삼국사기의 기록보다 최소 200년 이상 후대로 인식하고 있다. 중국의 학계에서는 역사서의 기록과 역사유적의 불일치로 하 ․ 상 ․ 주의 천년의 역사를 잃어버린 역사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문화혁명 이후 하상주단대공정(斷代工程)이란 작업을 실시했다. 문화혁명의 와중에서는 대륙 동부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그들이 말하는 소위 동이족(東夷族)의 역사유적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고 인멸했음에 반해 하상주단대공정은 관점을 바꿔 대상지역을 대륙중부로 이동, 새로운 고대 역사유적을 발굴하면서 그것이 하, 상, 주 시대의 것이었음을 확인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찾지 못해 잃어버렸던 하, 상, 주 천년의 역사유적은 대륙 동부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대륙중부에 있었다는 것이다. 대륙 동부는 그들의 과거사의 강역이 아니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일본의 역사학자들은 일본서기의 내용을 불신하지만 7세기 중엽 이후의 기록은 일본열도의 사정과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 이전의 역사는 아직도 암흑 속에서 헤매고 있다.

원래 만주는 우산국이 있던 곳으로 고구려를 이어 신라와 고려의 강역이었다. 청의 황실은 신라황족의 후예인데 청 이전 만주족은 대륙북부에서 이주해온 동여진인과 원래 거주하고 있던 만주족이 혼재되어 있었다. 만주원류고에는 이 두 세력의 역사 강역 인식이 같이 다루어졌다. 만주원류고 또한 해독하기 어려운 책이다.

우리 역사의 강역은 대륙의 서부에서 중부로, 중부에서 동부로, 또 동부에서 한반도로 이동되었다. 핵심 도읍지의 이동으로 살펴보면 고조선 때에는 대륙의 감숙성이었고, 고구려 때에서는 섬서성, 발해는 내몽골자치구, 신라는 안휘성이었다. 고려 때에는 하남성과 산동성으로 옮겼고, 조선 초에 산동성에서 한반도로 옮긴 것으로 나타난다. <표 >, <지도> 참조

   
▲ <지도 1> 우리 역사의 주요 도읍지 및 화하국가의 주요 도읍지

우리의 과제는 잘못 전해지고 있는 역사를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사서를 통해 진실된 역사를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역사가 일제와 청에 의해 식민사관으로 날조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역사 왜곡의 주범은 조선과 명이 조작한 반도사관이라는 허위의식이다.

식민사관이 창궐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민족이 청과 일본의 침략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던 비극에서 초래된 것이지만 반도사관이 굳어지게 된 배경은 조선 중기 지성인들의 방관과 묵인에 그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역사의 제 모습을 찾는데 있어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지성인들의 각성과 헌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우리민족의 참된 역사는 지금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조선왕조실록, 고려사, 삼국사기 등 각 시대의 정사서(正史書)를 통해 과거 매국노들이나 오늘날의 제도권 사학자들이 바로 읽지 못하는 내용을 찾아낼 수 있다. 그 진실의 내용이 밝혀져 일반인들이 납득할 수 있게 되면 우리역사는 광복되는 것이다.

이 시대의 양심 있는 지성인들은 그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도록 우리역사의 복원작업에 동참해야 한다. 이 작업은 오늘날의 제도권 사학자들이나 위정자들에게 맡겨서는 백년하청이다.

우리역사의 복원작업은 민간주도의 연구 활동이 중심이 되는 시민운동이 되어야 한다.

이에 바른역사연구모임의 결성을 제안하는 바이다.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꾸준히 활동할 모체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역사의 복원과 광복에 열정을 지닌 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한다.

바른역사연구모임 이병화(016-306-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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