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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신 녹권(功臣 錄券)
김민수의 조선시대 되짚어 보기(5)
2012년 09월 24일 (월) 13:36:47 김민수 ssk0102@hanmail.net

공신 녹권(功臣 錄券)

   
공신 녹권(功臣 錄券)은 공신도감(功臣都監)이 어명을 받아 각 공신(功臣)에게 발급한 공신임을 증명하는 문서로 조선시대에는 건국의 공로로 수여된 개국공신(開國功臣)을 비롯하여 28회에 걸쳐 공신 책봉(冊封)이 실시되었고 공신(功臣) 책봉(冊封)의 모든 과정을 기록한 내용은 녹훈도감등록(錄勳都監謄錄)으로 편찬되었으며, 충훈부(忠勳府)의 충훈부등록(忠勳府謄錄)에도 공신 책봉(冊封)에 관한 주요 내용이 기록되었다. 태조 대에는 이조와 공신도감(功臣都監)에서 공신 책봉(冊封)을 담당하였고, 1466년 공신도감이 충훈부로 승격된 뒤에는 녹훈도감(錄勳都監)에서 관장하였다. 공신 녹권(功臣 錄券)에는 녹권(錄券) 발급한 관서, 책봉자의 공신호(功臣號) · 관계(官階) · 본직(本職) · 겸직(兼職) · 작호(爵號) · 성명, 공신 책봉(冊封) 추천기관, 포상에 대한 국왕의 하교(下敎) 등의 공적 내용을 순위별로 기록하였다.

아미산(峨嵋山)

아미산(峨嵋山)은 교태전(交泰殿)의 뒤뜰에 경회루(慶會樓)의 연못을 판 흙을 쌓아 만든 작은 가산(假山)이다. 아미산에는 2벌대의 장대석(長臺石) 석축이 4층으로 쌓였고, 그 위에 괴석(怪石)의 석분(石盆)과 석지(石池) 등 석조물이 배치되었는데, 수석 1기는 1단에, 석분(石盆)과 석지(石池)는 1단·2단·3단에 있고, 굴뚝은 3단에 있으며 굴뚝 3기는 3단에 나란히 있고 1기는 동쪽 조금 뒤편에 있으며 화초들이 심어져 후원이 조성되어 있다.

4기의 6각형 평면을 한 굴뚝들은 화강석 지대석 위에 벽돌로 30단 또는 31단으로 쌓였고, 6각의 각 면에는 당초무늬·학·박쥐·봉황·나티·소나무·매화·대나무·국화·불로초·바위·새·사슴·나비·해치·불가사리 등의 무늬가 조화롭게 배치되었다.

각 무늬는 조형전(造形塼)을 구워 배열하였고, 그 사이에는 회(灰)를 발라 화면을 구성하였다. 6각의 각 면은 4종류의 무늬로 구성되었는데, 굴뚝 제일 아랫부분은 벽사상(辟邪像)으로 불가사리를 부조한 사각형의 벽돌을 끼웠고, 그 위의 직사각형 회벽에 십장생(十長生)·사군자(四君子) 또는 만자문(卍字文)을 조각했으며, 그 위에 다시 봉황(鳳凰)과 귀면(鬼面) 등이 부조(浮彫)된 네모 반듯한 벽돌을 끼웠고, 윗부분은 회벽(灰壁)에 당초문(唐草文)으로 구성하였다.

6각의 각 면 무늬 위로는 목조 건축물의 소로와 창방(昌防)·첨차(墅遮) 형태로 만든 벽돌을 쌓고 기와지붕을 이었으며, 정상부에는 점토로 만든 연가(煙家)를 각 4기씩 두어 연기가 빠지도록 하였다.

관기(官妓)

조선 태조가 개경(開京)에서 한양으로 천도할 때 많은 관기(官妓)가 따라왔고 조선시대 관기(官妓)의 설치 목적은 여악(女樂)과 의침(醫針)에 있었으며 관기(官妓)는 의녀(醫女)로서도 행세하여 약방기생, 상방(尙房)에서 침선(針線:바느질)도 담당하여 상방기생이란 이름까지 생겼으나 연회나 행사 때 노래 ·춤을 맡아 하였고, 거문고 ·가야금 등의 악기도 능숙하게 다루었다.

성종(成宗) ·세조 ·연조 ·양녕대군(讓寧大君) ·안평대군(安平大君)이 관기를 즐겼고 중종은 의녀(醫女) ·창기(娼妓)의 연회 참여를 금지시켰는데 연회를 할 때 의녀나 창기를 부르는 것을 엄금하도록 사헌부(司憲府)에 명령하고 절목(節目)을 만들도록 하여 위반자, 의녀,창기도 중벌로 다스리도록 하였다.

기생청(妓生廳)에서는 가무(歌舞) 등 기생이 갖추어야 할 기본 기예는 물론 행의(行儀) ·시(詩) ·서(書) ·화(畵) 등을 가르쳐 접대하는 상류 사족(士族)의 교양과 걸맞게 연마시켰다. 시(詩) 등 문장으로 유명한 명기(名妓)로는 황진이(黃眞伊) ·매창(梅窓) ·소백주(小柏舟)가 있으며, 유명한 의기(義妓)는 평양의 계월향(桂月香), 진주의 논개(論介), 가산(嘉山)의 홍련(紅蓮)이 있다.

공안(貢案)

1392년(태조 1) 10월에 공부상정도감(貢賦詳定都監)을 설치하여 각 지방의 토산물을 기준으로 공물의 품목과 수량을 정하고, 그 장부인 공안(貢案)을 마련하였다. 1408년(태종 8) 9월에 제주, 1413년 11월에 함경 ·평안도에서 내야 할 공물의 품목과 수량을 정함으로써 전국에 걸친 공납제가 마련되었다. 각 지방의 공물의 품목과 수량을 정할 때는 토지 면적을 기준으로 하여 그 지방의 생산물로 부과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중앙정부에서 각 군현에 공물의 품목과 수량을 적은 장부인 공안을 보내면 각 지방에서는 부과된 공물을 백성에게 직접 징수하거나 향리 장인(匠人) 및 지방관청 소속 노비, 군사 등을 사역하여 마련하였다. 직물류 ·수산물 ·과실류 ·목재류 등은 일반 백성이 내게 하고, 모피류 ·수육류 및 약재 등은 지방관청에서 마련하여 공물 상납하는 일을 맡는 하급 관리인 공리(貢吏)에게 정부의 관청에 직접 내게 하였다.

세조 · 성종 연간에 여러 차례 공안(貢案)을 개정하였고, 세조 대에 국가의 지출명세서인 횡간(橫看)을 제정함으로써 조선 초기 공납제의 성격이 결정되었다. 성종 대에는 제도상의 미비점을 보완하고 공납과정에서의 중앙관청 관리의 농간을 제거하고자 공납제를 일부 개선하였으나 다음해의 것을 앞당겨 징수하는 인납(引納) 및 본래의 용도와 달리 사용하는 별용(別用), 관리와 상인이 결탁하여 대신 납부하고 농민으로부터 높은 가격을 받아내는 방납(防納) 등의 비리행위가 자행되어 선조 대에 이이(李珥)가 공물(貢物)을 쌀로 대신 거두는 방법을 제안하였다. 현물을 납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 공납제는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한 16세기에 가서는 공물(貢物)을 당시 교역의 수단이던 물품화폐, 즉 쌀 · 베로 거두는 대동법(大同法)으로 전환되었다.

삼강행실도 오륜행실도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는 1431년(세종 13)에 집현전(集賢殿) 부제학(副提學) 설순(偰循) 등이 어명에 따라 조선과 중국의 서적에서 군신(君臣)·부자(父子)·부부(夫婦) 등 3강(三綱)의 모범이 될 만한 충신(忠臣)·효자(孝子) ·열녀(烈女)를 각각 35명씩 모두 105명을 뽑아 그 행적을 그림과 글로 칭송한 책이다.

각 충신(忠臣)·효자(孝子) ·열녀(烈女)의 행적 사실에 그림을 붙이고 한문으로 설명한 다음 7언절구(七言絶句) 2수의 영가(詠歌)에 4언일구(四言一句)의 찬(贊)을 붙였고, 그림 위에는 한문과 같은 뜻의 한글을 달았으며 1481년(성종 12)에 한글로 번역되어 간행되었다.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는 1797년(정조 21) 정조의 어명으로 이병모(李秉模) 등이 세종 대의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와 중종 대의 2륜행실도(二倫行實圖)를 합치고 수정하여 정리자(整理字)로 간행하였으며 1859년(철종 10)에는 경적(經籍)의 인쇄와 교정·향축(香祝)·인전(印篆)을 관장한 교서감(校書監)에서 중간하였다.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의 내용은 부자(父子) ·군신(君臣) ·부부(夫婦) ·장유(長幼) ·붕우(朋友) 등 5륜에 모범이 된 150인의 행적을 추려 적고 그 옆에 김홍도(金弘道)의 화풍이 역력한 그림을 덧붙였다.

국기판(國忌板)

국기판(國忌板)은 조선시대 국왕과 왕후의 기일(忌日) 및 탄일(誕日) 등 국기(國忌)의 행사에 관련된 사항들을 적어 놓은 판(板)으로 12개월을 표시한 12장의 종이에 각기 30일의 난을 만들고 일자 아래에 조선 국왕과 왕후의 기일(忌日) 및 탄일(誕日)을 적어서 판(板)에 걸어 두었으며 국기판(國忌板)은 관아,성균관,서원,향교의 대청마루에 항상 게시하여 사람들이 국기일(國忌日)을 잊지 않게 하였던 기록물이다. 국기일(國忌日)에는 전국적으로 가무(歌舞),음주(飮酒),잡희(雜戱) 등의 유흥이 모두 금지되었고 모든 도살(屠殺)을 금지시켰다. 궁중에서 국기제(國忌祭)가 예(禮)에 따라 거행되었고 국왕이 능침(陵寢)을 배알(拜謁)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국기제의 제사 의식은 유교의 의식에 따라 거행하였다.

4부학당(四部學堂)

4학(四學)은 동(東) · 서(西) · 남(南) · 중학(中學)의 총칭으로서 조선 초기에는 4부학당(四部學堂)이라 하였다. 동(東) · 서(西) · 남(南) · 중부유학(中部儒學)으로도 불리우다가 세조 12년(1466)의 관제(官制) 개혁 때 동 · 서 · 남 · 중학으로 개칭되었다. 태종 5년(1405) 한성부(漢城府)에 국가의 지도이념인 유학의 교육을 진흥시키기 위하여 동 · 서학당 외에 남부학당(南部學堂)이 태종 11년(1411) 6월에 설치되었고 10월 4부학당(四部學堂) 중에서 최초로 남부학당의 독립적인 학사(學舍)가 한성부(漢城府) 남부(南部) 성명방(誠明坊)에 건립되었다.세종 4년(1422) 12월 중부학당의 독립 학사가 한성부(漢城府) 북부(北部) 관광방(觀光坊)에 신축되었다.

서부학당(西部學堂)은 처음에는 한성부(漢城府) 북쪽에 편재해 있던 경고(京庫)를 이용하고 있었는데, 생도들의 아침 · 저녁 왕래가 크게 불편하였기 때문에 세종 17년(1435)에 이르러 한성부(漢城府) 서부 여경방(餘慶坊)에 독립 학사를 신축하게 되었다. 불사(佛寺)를 이용하고 있었던 동부학당(東部學堂)은 세종 17년(1435) 8월 경술(庚戌)에 동부학당을 보수하도록 명한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독립적인 학사가 있었다. 이 동부학당(東部學堂)의 건물은 세종 20년(1438) 3월에 여진(女眞)의 사신(使臣) 숙소인 북평관(北平館)으로 되고 한성부(漢城府) 동부(東部) 창선방(彰善坊)에 있던 우유를 전담 생산하기 위해 젖소를 키우는 목장 유우소(乳牛所)가 동부학당(東部學堂)의 건물로 되었다.

서원(書院)

서원(書院)은 명목상으로 성리학을 연구하고 선현을 제사지낸다는 설립 목적을 가지고 있었고 지방 사족(士族)의 지위를 강화해 주는 기능도 가지고 있었다. 사화(士禍)로 말미암아 향촌에 은거하여 생활하던 사림(士林)의 활동 기반이었으며, 임진왜란 이후에 급속히 발전하였다.서원(書院)은 유학의 성현들을 모시는 사당 또는 사묘(祠廟)의 역할, 향약(鄕約) 등의 향촌 질서를 정하고 백성들을 계도하는 역할, 단순한 교육이 아닌 학문 연구와 발전의 기능을 하는 연구소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향촌의 사림(士林)을 결집하는 역할도 하였다.

1542년(중종 37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순흥에서 고려의 학자 안향을 모시는 사당을 짓고 이듬해 백운동서원이라 한 것이 조선 최초의 서원이었고 그 후 전국 각지에서 많은 서원이 생겼으며, 1550년(명종 5년)에는 퇴계 이황의 건의로 국왕이 백운동서원에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편액을 하사하고 책·노비·전결(田結) 등을 주어 장려하였으며 이것이 사액서원(賜額書院)의 시초가 되었으며 국가의 보조를 받는 서원이 각처에 설치되어 명종 대 이전에 설립된 것이 29개, 선조 대에는 1백 24개, 숙종 대에는 1도에 80 ~ 90개에 이르렀다.

서원에 부속된 토지에는 조세를 과하지 않았고 양민이 원노(院奴)가 되어 군역을 기피하였으며 서원에 들어가 붕당(朋黨)에 가담하는 폐단이 생겨 1644년(인조 22년) 서원 설치를 허가제로 하였고, 1657년(효종 8년) 서원을 누설(累設)한 자는 처벌하였다. 1864년 흥선대원군은 서원에 대한 모든 특권을 철폐하고, 서원의 누설을 엄금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데 대한 보답으로 명나라 신종(神宗)을 제사지내는 사당 만동묘를 폐쇄하였다. 1871년 전국의 서원과 사우 1000여 곳을 헐어 버리고 47개소만 남겼으며, 서원 소유의 토지들을 거두어 국가에 귀속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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