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논평 환경/기술 지역/농업 전통/문화 미디어/사람 정보/게시판
  편집: 2019.8.21 수 16:47
> 뉴스 > 전통/문화 > 역사전통 | 북(北) 역사
     
대오방기(大五方旗)
김민수의 조선시대 전통과 문화 되짚어 보기(8)
2012년 11월 05일 (월) 14:10:43 김민수 ssk0102@hanmail.net

좌독기(坐纛旗)

좌독기(坐纛旗)는 행진할 때 우두머리 장수인 주장(主將)의 앞에 세우고 멈추면 군사를 지휘하는 장수가 올라서서 명령하던 장대(將臺)의 앞 왼편에 세웠던 사각형의 깃발이며 검은색 사각 천에 양의(兩儀: 양과 음 또는 하늘과 땅)와 4상(四象: 태양·태음·소양·소음 또는 물·불·흙·돌)을 나타내는 태극을 돌리고 8괘를 그렸고 조선국과 대한국의 국기인 태극기는 좌독기(坐纛旗)를 모티브로 하였다. 깃발의 가장자리에는 흰색 천으로 불꽃모양을 상징하기 위해 깃발의 가장자리에 덧댄 화염각(火炎脚)을 달았다. 좌독기에는 동·서·남·북·중앙의 5방에 해당하는 깃발과 그 위에 다는 좁고 긴 띠 같은 드림이 있는데, 청색 드림은 동방, 흰색 드림은 서방, 적색 드림은 남방, 흑색 드림은 북방을 대표하며 문양이 없는 황색 드림은 중앙을 나타낸다.표미기(豹尾旗)는 조선시대에 사용한 직사각형의 천 두 장에 표범무늬를 그려 넣은 군기(軍旗)로 직사각형의 천 앞뒤 폭에 표범무늬와 꼬리를 그려 넣었다. 표미기를 세워 놓은 곳에는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하고 이를 어긴 사람은 군법(軍法)으로 다스렸다.

동의보감(東醫寶鑑)

동의보감(東醫寶鑑)은 궁중에서 국왕과 왕족의 건강과 치료를 전문적으로 담당한 한의사인 어의(御醫) 허준(許浚)이 선조의 명을 받아 중국과 우리나라의 한의학서적을 편집하여 광조 3년(1611)에 완성하고 광조 5년(1613)에 간행한 한의학백과사전이며 총 25권 25책으로 금속활자로 발행하였다. 내의원(內醫院)의 의관 허준(許浚)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 16년간의 연구 끝에 완성한 한의학의 백과사전인 동의보감(東醫寶鑑)은 모두 23편으로 내과학인 내경편(內經篇),외형편(外形篇) 4편, 유행병(流行病)· 곽란(霍亂)·부인병(婦人病)·소아병(小兒病) 관계의 자편 11편,탕액편(湯液篇) 3편, 침구편(鍼灸篇) 1편과 이외에 목록 2편으로 되어 있고, 각 병(病)마다 처방을 풀이하였다.

금등지사(金縢之詞)

금등지사(金縢之詞)는 영조가 영조 38년(1762년) 임오년에 일어난 자신의 아들이자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죽음에 관련하여 남긴 글이다. 영조는 영조 38년(1762년) 노론(老論)의 모함으로 사도세자(思悼世子)를 정성왕후(貞聖王后) 서씨의 위패를 모셔놓은 혼전(魂殿) 휘령전(徽寧殿) 앞 마당 뒤주에 가두었고 사도세자가 들어 간 뒤주는 문정전에서 선인문(宣仁門) 안쪽으로 옮겼으며 사도세자가 선인문 안 뒤주 속에서 굶어죽었는데 훗날 임오화변(壬午禍變)을 후회하며 쓴 것이며 영조는 금등지사를 공개하지 않고 후세에 남기도록 했으므로 금등지사(金縢之詞)를 사도세자의 신위를 모신 사당인 수은묘(垂恩廟) 내부에 보관하도록 했다.금등지사를 입수해야만 죄인 신분으로 죽은 사도세자의 무죄를 입증하여 명예를 회복하고 나아가 정조의 정치적 권위를 회복할 수 있었으므로 노론과 소론이 대립을 했고 더 나아가 정조와 신료들의 갈등도 빚어졌다.

돈화문(敦化門)

창덕궁 돈화문(敦化門)은 조선 선조(宣祖) 대에 건립한 정면 5칸, 측면 2칸의 중층(重層) 우진각지붕 건물이며 태종 13년 2층 문루에 큰 종을 주조하여 걸었다. 제도(諸道)의 주철(鑄鐵) 1만 5천 근(斤)을 거두어 주조하게 하였는데 박자청(朴子靑)이 대장(隊長) 1천명으로 실어 들여오니, 상호군 현귀명(玄貴命)에게 명하여 내온(內醞)을 내려 주어 위로하고 이를 돈화문(敦化門)에 매달았다. 돈화문으로 들어서면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행복을 부르는 길상목(吉祥木) 회화나무 여덟 그루가 있고 오른쪽으로 금천교(錦川橋)와 진선문(進善門)이 나타난다. 중앙의 3칸은 가운데 주열(柱列)에 각각 2짝씩 문짝을 달았으나 좌우 맨 끝의 칸과 측면 앞의 절반은 모두 벽을 쳐서 막았다. 위층은 누마루를 깔고 4면에 작은 판문(板門)을 돌려 달았으며 고주(高柱)는 좌우 2개만 있고 가운데는 넓은 공간을 이루고 있다. 공포(栱包)는 상하층이 모두 내삼출목(內三出目) ·외이출목(外二出目)의 다포집 계통의 것으로 보 방향으로 얹어 첨차와 직교하여 짜여지며 끝을 소의 혀 모양을 한 쇠서들의 형태는 건실한 기풍을 지녔으며 내부의 살미 첨차(山彌 詹遮)들은 장식적 요소가 나타나 변형되었다.

내불당(內佛堂)

세종은 1448년(세종 30) 유생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복궁에 내불당(內佛堂)을 건립하고 그 안에 황금불(黃金佛) 3구를 안치해 불교를 보호하기 시작했다.단종 대에 집현전과 사헌부 학자들이 여러 차례 내불당 철폐를 상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세조 대에는 내불당을 크게 일으키고 법회를 열었으며 1464년에는 계양대군(桂陽大君)의 쾌유를 비는 특별법회가 있었다. 1470년(성종 1) 경복궁 내불당 철폐를 주장하는 성균관 유생들의 강력한 건의가 있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483년 예조(禮曹)에 내불당에 대한 특별경계와 순시를 명했으며, 1507년(중종 2)에도 내불당의 보호명령을 내렸다.조선은 억불숭유정책(抑佛崇儒政策)으로 일관했지만 왕실에서 선왕의 유지를 받든다는 명목으로 내불당(內佛堂)을 보호하여 조선 중기까지 유지되었다. 경복궁 녹원에 명성황후의 원당(願堂) 관월당(觀月堂)이 있었다. 1451년 인왕산 아래 서울시 종로구 누각동,옥인동 자수궁(慈壽宮)에 선왕(先王)의 후궁(後宮)이 거처하며 불교에 귀의해 여생을 보내게 하였으나 1623년(인조 1) 훼철되었고 자수궁(慈壽宮) 자리에 후궁(後宮)들이 노후에 니승(尼僧)이 되어 사는 자수원(慈壽院)으로 개명된 비구니원(比丘尼院)을 두었으며 1661년(현종 2) 2월 부제학 유계(兪棨) 등의 상계(上啓)로 폐지되었다.

칠원성군(七元星君)

칠원성군(七元星君)은 수명장수신(壽命長壽神)이다.북두칠성(北斗七星)이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과 수명(壽命)을 관장한다는 도교(道敎)의 믿음에서 유래한 7성신앙(七星信仰)은 조선시대에 병자호란이 일어난 후 청나라의 압력으로 도교를 숭상하면서 널리 퍼졌다. 7성(七星)은 북두칠성(北斗七星)을 뜻하며 칠원성군(七元星君)의 준말로 비를 내려 탐랑은 자손들에게 복을 주고 거문은 장애와 재난을 없애주고 녹존은 업장을 소멸시켜 주고, 문곡은 구하는 바를 모두 얻게 해주고 염정은 100가지 장애를 없애주고, 무곡은 복덕을 두루 갖추게 해주며, 파군은 수명을 연장시켜 준다.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칠성각(七星閣)이라는 전각을 세우고 치성광여래(熾星光如來-북극성)·일광여래(日光如來)·월광여래(月光如來)의 삼존불과 7여래(七如來)와 함께 7성신(七星神)을 칠성탱화(七星幀畵)로 모신다. 칠원성군(七元星君)은 대개 관모와 관복을 착용한 모습이 많고 도사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흑룡강 러시아 정벌(征伐)

1651년(효종 2) 러시아(나선:羅禪)는 자원이 많은 흑룡강(黑龍江)에 진출하여 곡물과 광물자원을 획득하였고 우수리강 하구를 지나 송화강(松花江)으로 내려왔으며 청나라는 총포로 무장한 러시아에게 연패하고 1654(효종 5)년 임진왜란 이후 조총(鳥銃)을 사용하는 조선에 조총군(鳥銃軍)을 요청하였다. 조선은 함경도 병마우후(兵馬虞候) 변급(邊岌)에게 조총군(鳥銃軍) 100명과 초관(哨官) 50여 명을 주어 지원군으로 파견하였다. 변급(邊岌)의 조선군은 모란강(牧丹江) 상류지역의 영고탑(寧古塔)에 이르러 명안달리(明安達哩)가 이끄는 청군 3천여 명과 합세하여 북상하다가 송화강 중류 혼동강(混同江)상에서 러시아군을 만나 교전하였고 7일만에 적군을 패퇴시켰으며 이것이 1차 흑룡강 러시아 정벌(征伐)이다.1658(효종 9)년 청나라는 다시 조선에 조총군의 파견을 요청하였고 조선은 혜산 첨사(惠山 僉使) 신유(申瀏)에게 조총군 200명과 초관 60여명을 주어 파견하였다. 신유는 모란강(牧丹江) 상류의 영고탑(寧古塔)에서 사이호달(沙爾瑚達)이 이끄는 청나라 군대와 합류하여 북상하였고 흑룡강과 송화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스테파노프의 러시아(나선:羅禪) 군사와 접전을 벌였고 10여 척의 배를 앞세우고 공격해 오는 러시아군에 총과 화전(火箭)으로 맞서 싸워 러시아군 270여 명을 전멸시켰으며 이것이 2차 흑룡강 러시아정벌이다.

대오방기(大五方旗)

대오방기(大五方旗)는 조선 시대에 진중(陣中)에서 바깥쪽 문표(門表)에 세워 전(前),후(後),좌(左),우(右),중(中)의 방위를 나타내던 기(旗)로 각기 예속된 부대 영(營)을 명령하는데 쓰였다. 청룡기(靑龍旗),백호기(白虎旗),주작기(朱雀旗),등사기(螣蛇旗),현무기(玄武旗)의 다섯 가지 대기치(大旗幟)가 있다.청룡기(靑龍旗)는 대오방기(大五方旗)의 하나로 진영(陳營)의 왼쪽 문에 세워서 좌군(右軍)·좌영(右營) 혹은 좌위(右衛)를 지휘하는 데 쓰였다. 푸른 바탕의 사각 천에 청룡(靑龍)과 청(靑)·적(赤)·황(黃)·백색(白色)의 구름문양을 그려 넣었다. 불꽃모양을 상징하기 위해 깃발의 가장자리에 덧댄 화염각(火炎脚)과 깃대 반대쪽 위아래나 그 사이에 불꽃처럼 붙인 기각(旗脚), 깃대 쪽에 덧댄 천은 붉은색이다. 백호기(白虎旗)는 대오방기(大五方旗)의 하나로 진영(陳營)의 오른쪽 문에 세워서 우군(右軍)·우영(右營) 혹은 우위(右衛)를 지휘하는 데 쓰였다. 흰색 바탕의 사각 천에 황색 날개 달린 백호(白虎)를 시문하고 그 주위로 청(靑)·적(赤)·황(黃)·백색(白色)의 구름문양을 그려 넣었다. 불꽃모양을 상징하기 위해 깃발의 가장자리에 덧댄 화염각(火炎脚)과 깃대 반대쪽 위아래나 그 사이에 불꽃처럼 붙인 기각(旗脚), 깃대 쪽에 덧댄 천은 노란색이다.

주작기(朱雀旗)는 대오방기(大五方旗)의 하나로, 진영(陳營)의 앞문(前門)에 세워서 전군(前軍)·전영(前營) 혹은 전위(前衛)를 지휘하는 데 쓰였다. 이 깃발은 붉은색의 사각 천에 머리가 셋 달린 주작(朱雀)과 청(靑)·적(赤)·황(黃)·백색(白色)의 구름문양을 그려 넣었다. 불꽃모양을 상징하기 위해 깃발의 가장자리에 덧댄 화염각(火炎脚)과 깃대 반대쪽 위아래나 그 사이에 불꽃처럼 붙인 기각(旗脚), 깃대 쪽에 덧댄 천은 청색이다. 이 깃발 또한 대가노부(大駕鹵簿)와 법가노부(法駕鹵簿) 등에 사용되었다. 현무기(玄武旗)는 대오방기(大五方旗)의 하나로, 진영(陳營)의 후문(後門)에 세워서 후군(後軍)·후영(後營) 혹은 후위(後衛)를 지휘하는 데 쓰였다. 이 깃발은 검은색의 사각 천에 뱀에 감겨 있는 거북과 청(靑)·적(赤)·황(黃)·백색(白色)의 구름문양을 그려 넣었다. 불꽃모양을 상징하기 위해 깃발의 가장자리에 덧댄 화염각(火炎脚)과 깃대 반대쪽 위아래나 그 사이에 불꽃처럼 붙인 기각(旗脚), 깃대 쪽에 덧댄 천은 황색이다. 이 깃발 또한 대가노부(大駕鹵簿)와 법가노부(法駕鹵簿) 등에 사용되었다.등사기(騰蛇旗)는 청룡기(靑龍旗), 백호기(白虎旗), 주작기(朱雀旗), 현무기(玄武旗) 와 함께 대오방기(大五方旗)의 하나로서 군대진영의 중앙에 세워 중군(中軍), 중영(中營), 혹은 중위(中衛)를 지휘하는 기이다.등사기의 바탕은 황색이며, 언저리는 적색이고 나는 뱀을 그렸는데 기는 사방이 5척, 깃대의 높이는 1장 5척이며 영두(纓頭), 주락(珠絡), 치미(雉尾)가 있고 또한 구름모양을 그렸고 화염(火焰)이 달려있다.

     관련기사
· 4인검이 뭐야 !
ⓒ 새마갈노(http://www.eswn.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잎과 꽃 다름 인정하는 상사화 처럼
우리는 순례자
통일비전과 예수의 분단장벽 허물기
맞잡은 두 손 불어라 평화 바람이여!
적은 무리여
하나님 나라가 이렇게 좋은 거군요!
한 서린 십자가
기후 위기 앞에 선 그리스도인
인류세와 기독교신앙
아베정권 가던 길 돌이키고 사죄하라!
진보운동계의 자아성찰서
『둥글이, 싸움의 철학』 나는 이 책을 펴기 전에는, 둥글이가...
나를 사랑하거나, 더 사랑하거나
비상시, 브레이크 댄스를 추시오
한국교회 지붕 햇빛발전소 설치를 ...
9월 3일(월) 오후2시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교...
신재생에너지로 90% 전력공급 가...
독자 설계 잠수함 건조
'돈의문박물관마을' 13개 프로그...
서울시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시민이 직접 제안하고 진행하는 13개...
헬조선을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포천 평화나무농장 생명역동농업 산...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서대문구 북가좌동 384-19, 성도빌딩 5층 | 전화 : 02-747-3191 | 편집인 010-8413-1415 | 제호 : 새마갈노
등록번호 : 서울 아03061 | 등록일 2014.03.24 | 발행인 : 양재성 | 편집인 : 류기석 | 청소년보호책임자 : 류기석
Copyright 2009 새마갈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esw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