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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세계의 언어습관
관료주의로는 순환형 사회 이루어지지 않아
2013년 12월 05일 (목) 12:47:58 이승무 sngmoo@cycleconomy.org

한국의 기업과 정부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로마자 몇 개로 만들어지는 전문용어를 잘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환경분야에서는 EPR(확대생산자책임)이니 RDF(폐기물고형연료)니 TMS(원격측정시스템) 같은 것들이 그런 것이다. 군사 분야에서는 그런 것들이 더 많다. SCM, WMD, KAMD, OPCON 이런 것들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외부자들은 알 수가 없다. 군사분야에서는 미국의 군사교본과 무기체계가 한국군에게 표준이 되어 있고, 작전에서 미군과 늘 협의를 해야 하니 그들의 용어에 익숙해야 할 것이다.

   
기업, 특히 대기업에 다니는 직원들도 늘 이런 식의 암호 같은 용어를 만들어서 구사하는 습관이 되어 있다. 그렇게 되면 늘 그 일에 종사하던 사람들 간에는 말을 절약할 수가 있어서 의사소통이 빨라지고 문서 작성에서 지면을 절약할 수 있고, 여러 개념들을 동원하여 사고를 전개해서 전략을 수립하는 데도 능률적이다.

그러나 그렇게 약어를 만들어 사용하게 되면서 원 명칭이 담고 있는 원래의 뜻에 대하여 더 이상 반추하는 일은 사라진다. 그리고 그 기능적인 측면만 남게 된다. 확대생산자책임은 생산자가 제품에 대하여 폐기단계까지 책임을 진다는 뜻인데 이를 EPR이라고 하면, 재활용실적을 제출하고 돈을 받는 것에만 생각이 모아지고 만다.

이런 언어구사 습관은 특정 집단에 강한 소속감을 가진 사람들이 공략해야 할 경쟁상대나 적을 머릿속에 두고 전략을 짜는 데는 효과적인지 몰라도 자기 집단이나 본인이 하는 행동이나 사고를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데는 결정적으로 장애물이 된다.

모든 집단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힘을 축적하고 팽창하려는 속성을 지닌다. 다른 집단에게 양보를 하거나 조직이 축소되는 것은 망하는 길로 가는 극히 불길한 일이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이것이 집단의 본능이며, 그 집단의 골간이 되는 종사자들은 도덕이나 정의를 생각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고, 조직의 생존과 팽창을 위해 팀웍을 이루어서 나가게 된다. 그래서 팀(team)이라는 경기용어가 기업과 정부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이런 세계에서는 용어나 개념을 둘러싼 다른 해석이나 이견, 논쟁이 있을 수 없고, 어떻게 하면 기능을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할 것인지, 어떻게 해야 원하는 목표를 쟁취하고 승리하고 팽창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생각을 모으게 된다. 개념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면 그것은 비생산적이고 쓸데없는 생각이고 공허한 것이고 실질이 없는 것이라고 비판을 받고 만다.

그러나 민주사회의 제도를 표현하는 법률 세계에서는 용어와 개념을 둘러싼 여러 가지 다른 해석과 이론들이 공존하면서 서로 다툼을 벌인다. 이 사회 안에는 내국인만 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에 대한 집단의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양한 취향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어떤 가상의 적대세력을 상정하고 이에 승리하려고 하는 전략이나 논리는 일반 사회의 공간에서는 쉽게 통하지 않는다. 극악한 범죄자, 컴퓨터 바이러스, 전염병 같은 위협요인들과 같은 한정된 위험에 대해서만 그 대처에 의견의 일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런 것을 인류 보편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보편적 가치지향이 실종된 집단이나 단체, 국가는 암세포처럼 공격성을 띠고 팽창하며 자기이익을 극대화하여 평화를 해치게 된다.

한 사회에서 유력한 위치에 있는 집단이 이런 행동양식을 가지게 되면, 그밖의 사람들은 고통을 받고 소외감을 느낀다. 국가기관이나 자치단체의 공무원들, 공공기관 종사자들, 대기업 직원들 이런 사람들이 자기 조직의 구심력 논리에 빠지게 되면 이들은 양심과 인도주의보다는 냉혈적인 매뉴얼을 따르는 인간이 되고 사회의 균형은 깨어지게 된다.

한국에서 이러한 경향과 이에 맞는 언어습관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어울어져서 사회는 점점 더 삭막한 곳으로 변하고 사회 자체가 해체될 위기에 놓여 있다.

이에 대한 책임은 권력과 돈을 가진 세력에게 영합하고 사회의 공적인 시민의식을 갖지 못한 도시의 소시민인 직장인들, 지배세력이 가르쳐 준 언어관습에 무비판적으로 물이 든 이들에게도 있다. 몰개성적이고 중성화되고 상하관계의 규율에 충실한 사람들을 원하는 지배세력에게 충실한 종이 되어 사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이 이룰 수 있는 사회는 없다. 이런 사회가 자원순환 사회가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힘겹게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몰이해와 말끔하고 일사불란한 것만 추구하는 관료주의로는 순환형 사회는 이루어지지 않으며, 있는 사회도 해체되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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