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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에 있던 신라
신라의 도읍지는 어디였을까 ?
2014년 12월 23일 (화) 15:10:42 이병화 bhlee9200@hanmail.net

대륙에 있던 신라

한반도에 위치하고 있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가 조선 중기 이후 경주진, 경주부였음은 틀림없지만 , 조선 초기의 경주부, 고려의 계림부, 동경, 경주대도호부 신라의 도읍지였던 경도, 명활성, 월성, 금성, 서나벌이었는지는 불분명하다.

   
▲ 신라의 국호와 도읍지 표 1

신라의 도읍지와 관련되는 기록을 검토해 볼 때 신라는 한반도에 있었던 나라가 아니라 대륙에 있었던 나라였음을 알 수 있다. 신라 전성기에 도읍지에는 17만 8천호가 있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은 지금부터 천삼백년 전에도 신라의 수도는 백만명 정도의 사람들이 대도시를 이루고 살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의 경주에서는 삼국사기에 나타나는 30 곳의 신라 궁궐과 수십 곳의 불교 사찰과 사원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또 삼국사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왕릉과 함께 있었다는 원찰의 존재도 흔적이 없다. 신라가 건국할 때의 국호는 서나벌이었고, 서나벌은 도읍지의 명칭이기도 했다.

전57년 건국한 서나벌은 진한을 이었고, 진한은 대부여 ( 전425 ~ 전232 )가 왕조를 마감하고 그 강역이 북쪽에 북부여, 남쪽에 삼한 ( 마한, 진한,변한 )으로 재편되면서 등장한 마한의 제후국이었다. 진한은 대부여의 삼조선 ( 진조선, 번조선, 막조선 ) 중 중심국이었던 진조선 강역의 일부였다. 그 곳은 진한 이전에는 서(徐) ( 전1,250 ~ 전250 )라는 진조선의 제후국이 있던 곳이다.

서나벌이 시작될 때 그 곳에는 서나벌과 국경을 접했던 진(秦), 한(漢)의 유민들이 모여들었고, 진조선과 번조선 사람들이 이주했던 지역이다. 이 때의 서나벌은 남동쪽에 미리 자리잡고 있던 마한 ( 전323 ~ 10 )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했고, 서쪽의 화하족의 위협에도 자유롭지 못했던 것으로 전한다.

서나벌과 금성은 북송(北宋)의 중심지역

서나벌의 위치는 사천성 성도시로 비정할 수 있다. 이곳은 서나벌이 동쪽으로 도읍지를 옮긴 후 한,진의 강역으로 편입되었고, 신라 때에는 당의 강역이었다.

   
▲ 신라의 도읍지 지도 1

북송( 960 ~ 1127 )의 응천부, 명 초기의 도읍지 남경응천부였다. 고려 때 북송으로 간 고려의 사신에게 북송의 대신들이 선도산 성모의 전설에 대해 질문했다는 일화에서 서나벌의 건국신화가 북송의 수도권에서 회자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서나벌의 북동쪽에는 옛 청구 ( 전2,707 ~ 전 2,333 )의 도읍지였던 낙랑홀이 있다. 사천성 면양시이다. 이곳은 북송의 복주였는데 이곳에서 북송과 요가 협약을 맺은 곳이기도 하다. 또 가까이 북서쪽에 당의 도읍지 낙양이 위치한다.

당의 낙양은 사천성 도강언시로 추정된다. 서나벌 ( 전57 ~ 65 )은 서쪽으로 한, 북쪽으로 물길, 북동쪽으로 예맥, 남동쪽으로 백제와 마한, 남쪽으로는 변한과 인접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나벌은 전32년까지 25년 동안 서나벌에 도읍했다가 동쪽 지역으로 이동해 금성으로 천도한다. 금성에서 97년 간 도읍했다가 65년에 국호를 시림으로 바꾼다.시림은 계림이라고도 불렀는데 화하족의 기록에 나타나는 계림은 시림을 지칭하는 것이다.

시림의 도읍지는 금성이었는데 101년 금성에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 시림은 도읍지를 월성으로 옮긴다. 금성의 위치는 사천성 낭중시, 월성은 섬서성 순양현으로 비정할 수 있다. 시림의 금성은 북송의 수도였던 개봉과 인접해 있다. 북송의 도읍지 개봉은 사천성 남충시인데 시림의 금성은 시림이 멀리 동쪽으로 이동한 후 백제, 고구려, 발해의 강역으로 이어지다가 발해 멸망 이후 후진(後晉) ( 936 ~ 946 )의 도읍지 변경이 된다. 시림의 도읍지 금성은 변한(卞韓)의 도읍지이기도 했던 것이다. 후진 이후 이곳은 북송, 금, 원,명의 강역이 되었다.

신라의 월성은 세곳

신라의 월성은 세곳으로 추정되는데, 첫번째 월성은 시림의 도읍지, 두번째 월성은 시림이 도읍지를 옮기고 국호를 신라로 바꾼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이 두곳에는 모두 반달 모양의 성곽을 수축한 것으로 보인다. 세번째 월성은 신라가 멸망할 때까지 도읍했던 경도이다.

   
▲ 이병화 역사연구가
첫번째 월성은 월지 또는 중마한 ( 전 194 ~ 65 )이라고 부르던 제후국의 도읍지였던 곳으로 추정된다. 101년부터 307년까지 206년 동안 시림의 도읍지였다. 섬서성 순양현으로 비정된다. 이곳에 축성된 성곽은 반달 모양이 뚜렷하다. 이곳은 예국의 강역이었다.

시림의 강역은 내륙에 치우쳐 있던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은데 시림은 이 때 동쪽으로 뻗어나가면서 해안지방을 장악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시림은 새로 확보한 넓은 지역으로 옮겨간 후 신라로 국호를 바꾼다. 이 때 도읍한 곳이 두번째 월성으로 추정된다. 강소성 남경시로 추정된다. 이곳의 성곽도 반월이다.

이곳은 고려의 피난 도읍지였던 송도였다. 송도는 조선 초에도 조선의 강역이었다가 명이 차지한 후 서쪽 사천성 성도시의 남경응천부를 이곳으로 옮겨놓았던 것이다. 신라는 두번째 월성에서 168년 간 도읍했다가 475년 명활성으로 천도한다.

명활성은 안휘성 봉양현으로 비정되는데 이곳에는 지금도 옛유적이 남아있는데 유적을 살펴보면 신라의 유적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부근에 신라의 왕릉으로 추정되는 10개의 무덤과 부속 사찰을 확인할 수 있다.

신라는 488년 도읍지를 명활성에서 월성으로 옮겼다고 전하는데 이곳이 신라가 왕조를 마감할 때까지 도읍했던 경도로 추정된다. 신라의 세번째 월성으로 판단된다. 이곳의 위치는 안휘성 합비시이다. ( 신라의 국호와 도읍지 표 1 참조 )

신라의 경도는 당시 동아시아 최대도시

안휘성 합비시는 도시 둘레에 완전한 해자를 갖춘 성곽도시로 15세기에 제작된 지도에 이 곳이 경주로 표기된 것이 있다.

이곳은 고려 때부터 경주라고 했다. 신라의 도읍지 경도는 옛부터 근화향이라고 부를 정도로 무궁화를 많이 재배했는데 합비시의 시화가 무궁화이다. 신라는 이 곳에 도읍한 이후 국난을 극복하면서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512년에 요동반도 중심의 우산국을 복속시켰고, 532년에는 광동성과 복건성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가락을 멸망시키고 그 강역을 흡수했고, 562년에는 강서성의 대가야를 합병했다.

또 광서자치구와 귀주성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왜를 정벌했으며, 북쪽으로는 산동성과 하북성의 고구려를 침공했다.

660년과 668년에는 산동성,호북성,호남성, 하남성, 사천성을 아우르던 백제와 섬서성,감숙성, 산서성, 하북성, 내몽고자치구를 지배했던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그 거대한 강역의 일부를 차지했다.

662년에는 한반도의 탁라를 복속시켰다. 또 대만과 구주를 점령하고 오랜 기간 통치했던 것이다. 신라의 경도에는 진흥왕 때 조성한 국제시장이 두곳이나 있었다고 기록으로 전한다.

700년 대 이후의 신라의 도읍지 경도는 30곳의 궁궐, 수십곳의 사찰과 사원, 사치의 극을 이룬 귀족들의 대저택들과 관청가, 기와집으로만 축조된 광대한 주택가와 상가, 외국인 거류지 등 인구 100만을 수용했던 동아시아 최대 도시였던 것이다.

신라의 도읍지는 사천성에서 두곳, 섬서성으로 옮긴 한곳, 동쪽으로 멀리 강소성 한곳, 안휘성의 두곳으로 모두 여섯곳으로 추정된다. (신라의 도읍지 지도 1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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