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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삶, 희망의 삶보다 강력
김홍한목사의 이야기 신학 131호
2015년 03월 20일 (금) 14:32:49 김홍한 khhyhy@hanmail.net

사람은 희망이 있어서 산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 만은 않은 것 같다. 때로는 도무지 희망이 없는 지옥 같은 삶이지만 내가 꼭 짊어 져야 할 십자가, 풀어야 될 한이 있어서 사는 이들이 있다. 그 고통과 고난의 삶이 희망의 삶보다 오히려 더 강력하다.

   

예수께서 내 십자가를 짊어지셨다고? 예수께서 내 한을 풀어 주신다고? 누군가가 대신 짊어질 수 있는 십자가라면 그것이 어찌 십자가겠는가? 누가 대신 풀어줄 "한"이라면 그것이 어찌 "한"일 수 있겠는가? 꼭 자신이 짊어 져야 하기에 제 십자가요, 평생 가슴에 묻어 두어야 하기에 한 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셨다. 그러나 희망만 주신 것이 아니다. 무거운 십자가도 주셨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지워주는 짐은 쉽고 가볍다”고 하신다.

기꺼이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십자가를 질까? 무거운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천국을 소망할 여유가 없다. 십자가는 소망으로 지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지는 것이고, 버릴 수 없기 때문에 지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다.

가수 김광석의 노래 가운데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라는 노래가 있다. 아프지 않은 사랑이 있을까 만은 때때로 너무 아픈 사랑, 너무 비참한 사랑도 있다. 그것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뒤 돌아 보니 그것은 고통이지 사랑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면 너무 고통스런 인생도 인생이 아닐까? 그럴 수 있다. 인생이 너무 아프고 너무 비참해서 도무지 사람의 삶이라 할 수 없다면 그것은 인생이 아닐 것이다.

내가 30대 중반부터 50세까지 15년의 세월이 힘든 세월이었다. 그 고통의 결과가 오늘의 나다. 그 경험이 있어서인지 다른 것들에는 무덤덤한 내가 “생활고를 비관하여~” 하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 가슴이 막히며 나도 몰래 험한 소리가 튀어나온다. “쌍놈의 세상~”

“쌍놈의 세상~”

1803년은 정약용이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한 지 3년째 되는 해, 갈대밭 마을에 사는 한 농부가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사흘 만에 군보에 아이의 이름이 오르고 급기야 이정이 군포 대신 소를 빼앗아 갔다. 농부가 억울한 심경을 이기지 못해 칼을 뽑아 자기의 생식기를 스스로 베면서 울부짖었다. “내가 이것 때문에 곤욕을 당하는 구나.” 그의 아내가 아직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생식기를 관가에 가지고 가서 울면서 자신들의 기막힌 사정을 호소하였으나 문지기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버렸다. 이 이야기를 들은 정약용이 시를 지어 한탄한다.

시아버지 죽어서 이미 상복 입었고
갓난아이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
삼대의 이름이 군적에 실리다니

달려가서 억울함을 호소하려 해도
범 같은 문지기 버티어 있고
이정이 호통하여 단벌 소만 끌려갔네

남편 문득 칼을 갈아 방안으로 뛰어들자
붉은 피 자리에 낭자하구나
스스로 한탄하네
‘아이 낳은 죄로구나’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 16>, 111-112쪽에서 인용

역시 정약용이 전남 강진에서 10년째 유배생활 할 때의 일을 적은 것이다.

“1810년 여름에는 쇠파리가 크게 들끓어 방마다 가득차고 우물우물 엉겨서 번식하여 만산폐곡(漫山蔽谷)과 넓고 큰 집에도 엉겨붙고 술집과 떡집점에도 구름처럼 몰려와서 소란을 피웠으므로, 노인들은 차탄하여 괴변이라고 말하고 아이들은 파리를 잡느라 팔을 걷어붙이고 마치 쌈싸우듯 하고 집집이 파리 잡는 통을 만들어 그 속에 파리가 들어가 죽도록 하고 파리 잡는 끈끈이를 만들어놓고 들어붙어 죽도록 했다. 나는 말하기를, 슬프다, 이들 파리를 죽여서는 안 된다. 이들은 굶어죽은 사람들이 변하여 파리가 된 것이다. 슬프다, 기구하게 살아왔구나. 작년에 큰 흉년이 들고 작년 겨울 몹시도 추웠고 또한 질병이 돌고 또 여기에 세금을 긁어갔으므로, 쌓인 시체가 거리에 널려 엎어지고 자빠져 죽은 사람들이 숲더미 언덕바지에 염도 않고 관도 없이 찌는 듯이 더운 바람에 피부가 썩고 문드러져 진물이 나오는 데서 구더기가 생기고 이들이 냇가 모래알보다 만 배나 더 많이 늘어나서 날개가 생겨 인가에 날아들어오는 것이니, 오호라 쇠파리가 어찌 我類가 아니랴, 네가 살아온 것을 보니 왕연(汪然)히 눈물이 쏟아진다.”

박은봉, <한국사백장면>. 299쪽에서 인용

장터

“장사치들이 모여들어 물건을 사고파는 곳을 장터라고 한다. 처음 내가 서울에 와서 거리를 둘러보니 여자들이 얼굴을 곱게 단장하고 애교를 떨면서 몸을 파는데 그 밉고 예쁨에 따라 몸값이 오르내렸다. 드러내놓고 이런 짓을 하면서 조금도 부끄러워할 줄 몰랐다. 이것을 계집장터라고 하는데, 풍속이 아름답지 못함을 알 수가 있다.

또 관아에 들어가 보니 조문을 멋대로 기록하고 법을 농간하는 자들이 죄수를 마음대로 놓아주는데, 죄질의 경중에 따라 그 값이 오르내렸다. 드러내놓고 뇌물을 받으면서도 조금도 머뭇거리거나 두려워할 줄 몰랐다. 이를 구실아치의 장터라고 하는데, 형벌의 정사가 다스려지지 않음을 알 수가 있다.

지금 또 보니 사람장터도 있구나. 지난해에 홍수와 가뭄으로 백성이 먹거리가 없어서 힘센자는 도둑이 되고 허약한 자는 떠돌이가 되었다. 입에 풀칠을 할 수가 없어 아비 어미는 자식을 팔고 지아비는 지어미를 팔고 상전은 종을 팔려고 저잣거리에 줄을 섰으나 그 값이 너무나 헐하다. 팔릴 물건이 개나 돼지와 다를 바가 없는데도 이를 바로잡을 담당 관리들은 모르는 체한다.

아아, 앞의 두 장터는 그 정상이 가긍스러워서 일찍 없애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진실로 세 장터를 없애지 못하면 나는 아름답지 못하고 다스려지지 않는 것들이 여기에 그치지 않을 것임을 아노라.”

이곡, <가정집> 市肆說(시사설).

이이화 한국사이야기 7권 200쪽에서 인용

"가난은 나라님도 어찌할 수 없다”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권력자들의 변명이고 기만이다. 민중들의 고통을 해결하려 하지 않는 정치는 정치가 아니다. 민중들의 가난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 경제는 경제가 아니다. 민중들의 비참함을 신과 담판하지 않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다.

정약용이 유배를 떠난 것은 개혁군주라 할 정조임금이 서거한 1800년 이후이다. 개혁군주의 서거로 그가 추진했던 개혁정책도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개혁의 실패는 위와 같이 비참하다. 백성들 가난의 제일 큰 원인은 정치에 있다. 아무리 천재지변이 심각하더라도 위정자들이 하고자 한다면 백성들은 굶어 죽지 않는다.

이곡이 장터이야기를 한 때도 개혁의 실패로 인한 사회상이다. 때는 무신정권이 무너지고 몽골의 지배를 받을 때였다. 비록 몽골의 지배를 받는다고는 하나 전쟁이 끝난 평화의 시기다. 이 때 충선왕과 충목왕이 개혁을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결과가 위와 같다. 곳곳에서 농민봉기와 반란이 일어나고 백성들은 아내를 팔고 자녀를 팔았고 인육을 먹었다.

하늘은 언제든지 풍성히 준다. 곡식 한 알을 심으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주는 것이 하늘이다. 강과 바다에는 물고기가 그득하고 백성들은 늘 힘들게 일하는데 백성들이 굶주린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苛政猛於虎(가정맹어호/가혹한 정치는 범보다 사납다)”라는 말이 있듯이 백성들이 가난한 것은 무엇보다도 가혹한 정치 탓이 제일 크다.

오늘날 가렴주구는 한 나라에 국한하지 않는다. 초강대국이라는 미국은 전 세계를 상대로 공갈과 협박을 일삼고 전쟁을 부추기고 전쟁을 일삼는다. 다국적 기업들은 산골 오지 빈민들의 호주머니 까지 톡톡 털어간다. 대기업들은 골목상권까지 파고들어 자영업자와 노동자들의 땀에 찌든 돈은 물론이고 노인들이 폐지를 수집하여 얻는 돈마저 깎고 또 깎아간다. 젊은이들이 생활전선에서 손에 쥐는 돈은 100만원을 넘지 못한다.

글로벌경제에 충실한 대한민국, 한창 일할 나이의 중장년이 직장을 잃는다. 젊은이들은 미래가 없다. 그래서 결혼 할 수가 없다. 결혼한다 하더라도 아기를 낳을 수 가 없다. 짐승도 때가 되면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낳는데 사람이 짝짓기를 못하고 새끼도 못 낳고 제 보금자리도 마련하지 못하니 사람의 처지가 짐승만도 못하다.

오늘날의 장터

이곡이 살았던 고려시대,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사회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더욱 복잡해진 것이다. 장터가 더욱 많아졌다.

금융장터가 있다. 금은 항상 그 시대의 최고로 강한 나라, 최고 강자에게 모인다. 페르시아에 모인 금은 마케도니아로, 다시 그 금은 로마로 모였다. 스페인을 거쳐 영국으로 오늘날에는 미국에 모여 있다.

고대 이집트 신화의 내용이다. “처음에 레가 말했다. 나의 피부는 순금이다.” 신과 금을 일치시킨 것이다. 일본에서는 금으로 절을 지어 金閣寺라 했다. 서양에서는 피사로와 코르테스가 아메리카에서 가져온 금의 대부분은 교회장식에 사용되었다. 그 금이 오늘날에는 은행에 모여 있다.

老子는 말하기를
“얻기 어려운 물건을 귀히 여기지 말라. (不貴難得之貨)
-노자 3장-

토마스 모어는 말하기를

“유토피아에서는 노예들의 무거운 족쇄를 금으로, 묶는 사슬을 금으로, 파렴치한 행위자에게 금귀고리, 금반지, 금사슬을 두르고 금 머리띠를 씌운다. 그들은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금은을 경멸의 대상으로 삼는다. 보석은 아이들의 장난감, 크게 되면 내던진다. 유토피아에서는 귀한 생필품은 진흙으로 아주 정교하게 그러나 요강 등 대중이 이용하고 천한 용도에 금은을 사용한다.”

<유토피아> 중에서

보물이라는 것은 희귀성에 기초한다. 금이 귀한 것은 얻기 어려워서 이다. 흔하고 흔한 것이 흙이고 물이고 공기이다. 거기에서 생명이 나오고 자란다. 귀하고 귀한 것에서는 생명이 나오지 않는다. 귀한 것과 중요한 것은 구별해야 한다. 귀하다는 것이 결코 중요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고귀한 보물일수록 생명과는 무관한 것들이다.

금은 귀족들이 귀하게 여기니 백성들도 덩달아 귀하게 여길 뿐, 실제 민중들에게는 쓸모없는 것이다. 정말이지 평범한 사람들에게 금이라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배고플 때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추울 때 옷을 해 입을 수도 없고 땔감으로 쓸 수도 없다. 기껏해야 사치품이나 장식용으로 이용될 뿐이다. 이렇게 쓸모없는 것이니 그것이 은행 금고에 쌓여있든 예배당 장식으로 사용되든 상관이 없다.

금은 번식을 한다. 금의 양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자를 거두어 번식한다. 이자는 돈이다. 돈이 증가하는 것도 아니다. 숫자가 증가한다. 전 세계 돈의 3%만 유통된다. 나머지 97%는 컴퓨터상의 숫자로만 존재한다.
세계적 무기상들이 무기를 사고파는 무기장터도 있다. 그런데 무기 장터는 무기를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전쟁을 사고판다. 필요에 의해서 무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기를 팔기 위해서 전쟁을 만든다.

초강대국 미국이 금을 모으는 중요한 수단이 무기산업이다. 미국은 세계 곳곳을 전쟁터로 만들고 거기에 무기를 판매한다. 자신들이 적에게도 무기를 판다. 그런 적이라면 사실은 적이 아니라 고객이다. 무기산업의 진정한 적은 평화다. 평화를 외치고 평화를 실천하는 이들이 적이다.

오늘날은 정보화 시대, 인터넷이 생활화 되면서 정보화 시대가 도래 하였다. 얼핏 생각하기에 인터넷을 통해서 필요한 정보, 유익한 정보를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정보들은 숨어있고 누군가가 독점하고 있다. 작가 김진명은 그의 소설 <하늘이여 땅이여>에서 수아의 입을 통해서 이야기 한다.

“해킹의 기본 정신은 자유에 있어요. 세상의 모든 정보를 함께 나누자는 거죠. 인간의 역사는 좀 더 많은 사람이 좀 더 많은 자유를 누리자는 쪽으로 진행되어 왔어요. 아마 이것을 발전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자본주의가 심화됨에 따라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본에 예속되었어요. 일방적인 정보의 장악은 이 예속을 심화시켰죠. 해킹은 정보의 세계만큼은 가진 자 못 가진 자를 떠나 모든 사람이 같이 자유롭게 나누자는 기본 정신에서 출발했어요. 돈이 아닌 인간의 노력과 능력만큼 정보를 갖는 평등이 해킹에는 있어요.”

해킹을 범죄로만 알았는데 거기에 평등의 가치를 부여한 김진명의 식견이 놀랍다.

지식인 들이 지식을 파는 지식장터도 있다. 유치하게 논문을 사고팔기도 한다. 사람의 장기를 팔고 사는 장기장터도 있다. 사랑도 매매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사고 팔 수 있다. 교회조차도 상품이 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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